기분 상한 일을 종이에 적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 종이를 버렸을 때 결과가 달랐다. 일본 나고야대 연구진의 두 실험에서 모욕적인 평가를 받은 뒤 자신의 생각을 적은 종이를 버리거나 분쇄한 집단은 종이를 보관한 집단보다 바로 측정한 분노가 낮았다. 폐기 집단의 평균 분노는 실험 전 수준과 통계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 정도로 내려갔다. 다만 누구나 어떤 분노든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2024년 발표된 실험을 통해 ‘기록’과 ‘기록한 종이를 처리하는 행동’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두 집단 모두 썼다. 달랐던 것은 종이의 마지막 행선지
연구진은 먼저 참가자에게 사회 문제에 관한 짧은 글을 쓰게 했다. 이어 박사과정 학생이 글을 평가하는 것처럼 꾸며, 실제 글의 내용과 관계없이 낮은 점수와 모욕적인 평을 전달했다. 이 평가는 연구를 위해 준비한 자극이었다. 참가자들은 그 뒤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평가에 대해 어떤 생각과 반응이 들었는지를 종이에 썼다. 연구자가 그 메모를 읽지 않는다고 안내해 솔직한 생각을 기록하도록 했다.
첫 실험에서는3분 동안 생각을 쓰고30초 동안 내용을 다시 읽은 뒤, 한 집단은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른 집단은 종이를 뒤집어 투명 파일에 넣고 책상 위에 보관했다. 즉, ‘메모를 쓰는 사람 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의 비교가 아니었다. 두 집단 모두 글쓰기를 했고, 이후 폐기하거나 남겨 둔다는 조건이 달랐다. 최종 분석에는 대학생50명의 결과가 포함됐다.
평균 분노는 버린 쪽1.87, 보관한 쪽2.64
분노는 참가자가 스스로 답한 다섯 감정 문항의 평균으로 측정했다. 점수 범위는1~6이며 높은 쪽이 더 강한 분노다. 첫 실험의 폐기 집단은 모욕적 평가 뒤 평균3.34였던 점수가 종이를 버린 뒤1.87로 낮아졌다. 보관 집단도3.45에서2.64로 내려갔지만 실험 전보다 높은 상태가 남았다. 폐기 집단의 실험 전 평균은1.59였다. 연구에서 ‘처음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표현은 마지막 값과 처음 값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모든 참가자의 점수가 정확히 원래 값으로 같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이 결과만으로는 몸을 움직여 종이를 멀리 던진 행동이 영향을 줬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실험은 양쪽 모두 책상 위 장치를 사용하게 했다. 폐기 집단은 종이를 분쇄기에 넣고 잘리는 모습을5초 동안 봤다. 보관 집단은 메모가 보이도록 투명 상자에 넣고 같은 시간 동안 바라봤다. 두 집단의 종이와 몸 사이 거리, 넣는 동작을 더 비슷하게 맞추려는 설계다. 첫 실험과 겹치지 않는 참가자46명이 최종 분석에 포함됐다.
두 번째 실험에서도 같은 방향의 차이가 나타났다. 폐기 집단의 분노 평균은 모욕 뒤3.14에서 처리 뒤1.98로, 보관 집단은3.24에서2.75로 변했다. 연구진은 종이를 실제로 없애는 행동뿐 아니라 ‘버린다’고 받아들이는 의미가 감정 변화와 관련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이것이 작동 원리를 최종적으로 입증한 결론은 아니다. 두 실험이 보여 준 직접적인 결과는, 이 조건에서 메모를 폐기한 집단의 즉시 자기보고 분노가 보관 집단보다 낮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메모를 지우는 것도 같은 효과일까
이번 실험은 실제 종이와 쓰레기통 또는 분쇄기를 사용했다. 휴대전화 메모 삭제, 메시지 전송, 사진 삭제가 같은 결과를 낸다는 실험은 아니다. 따라서 이 결과를 디지털 기록에 그대로 옮기거나 종이를 보관하면 반드시 화가 커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화가 난 상대에게 적은 내용을 보내는 방법과도 다르다. 연구에서 감정 메모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는 개인 기록이었다.
일상에서 참고한다면 감정을 쓴 종이를 남에게 보여 주거나 전송하기보다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작은 행동으로 이해하는 편이 연구에 가깝다. 그렇다고 사건 해결에 필요한 계약서·증거·업무 기록까지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실험에서 버린 것은 과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적은 별도 메모였다. 메모를 쓰는 행동과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를 구분하면, 잠시 감정을 정리하는 용도로 이 발견을 읽을 수 있다.
논문은2024년4월9일 Scientific Reports에 공개됐으며 나고야대는 다음 날 결과를 소개했다. 첫 실험은 주로21세 전후 대학생, 두 번째는 평균26세 전후 참가자를 분석했다. 모욕적 평가를 받은 직후의 감정 변화를 측정했을 뿐, 며칠 뒤에도 효과가 남는지나 실제 가족·직장 갈등, 만성적인 분노 문제의 치료 효과를 검증한 연구는 아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치료를 대신할 만능 요령이 아니라, 같은 생각을 써도 종이를 남겨 두는 것과 폐기하는 것 사이에 확인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