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앞쪽 안개에 커다란 사람 형상이 비치고 머리 둘레에 둥근 무지갯빛이 보인다면, 멀리 서 있는 다른 등산객일까. 영국 기상청이 설명하는 ‘브로켄 스펙터’는 관찰자 자신의 그림자가 안개나 구름에 투영된 현상이다. 태양은 내 뒤에 있고 안개는 앞에 있는 배치가 핵심이다. 큰 형상의 정체와 주변 빛 고리를 나누면 신비롭게 보이는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
거인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
기상청은 산 위에서 안개나 구름을 내려다보는 경우를 설명한다. 그림자가 안개 쪽으로 길게 투영될 때 사람은 그 형상을 멀리 있는 물체처럼 해석할 수 있다. 거리의 기준이 되는 물체가 없는 구름에서는 크기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실제 거인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내 그림자의 거리와 크기를 잘못 짐작하는 착시가 겹치는 것이다.
안개 속 물방울이 모두 같은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림자는 거리와 위치가 다른 물방울에 걸쳐 투영된다. 그래서 안개의 움직임이나 밀도에 따라 형상이 달라 보일 수 있다. 선명한 벽에 비친 그림자처럼 한 평면에 고정된 실루엣이라고 생각하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머리 둘레의 고리는 ‘glory’
NASA의 설명은 그림자 머리 주변에 생긴 색 고리를 glory라는 광학 현상으로 구분한다. 빛이 작은 물방울에 들어갔다가 관찰자 방향으로 돌아오는 복잡한 과정이 관련된다. 일반 무지개를 아주 작게 줄여 머리 주변에 붙인 장면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관찰자의 그림자와 그 둘레의 빛 고리가 함께 보이지만 두 요소의 의미는 다르다.
산에서만 가능한 장면은 아니다
NASA가 소개한 기록은 2014년 8월 11일 헝가리 Veszprem에서 촬영됐다. 관찰자는 20층 건물 옥상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안개를 바라봤다. 사진 속 도시는 실제 배경이고 앞의 큰 사람 형상은 관찰자의 그림자다. 높은 산이 아니더라도 빛·관찰자·안개의 상대적인 배치가 맞으면 같은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례다.
이 사진은 NASA에 수록돼 있지만 촬영자는 Tamas Ladanyi이며 저작권이 명시돼 있다. NASA가 실은 자료라는 이유로 모든 사진이 NASA 소유의 자유 이용 이미지라고 보면 안 된다. 또 기록의 2014년 촬영일과 이번 설명을 확인한 시점도 다르다. 오늘 새로 발생한 자연 현상을 보도하는 기사가 아니다.
낮의 내 그림자와 밤의 달빛 무지개는 다른 답
밤의 폭포에서 달빛이 물안개를 통해 무지개를 만드는 moonbow와는 관찰 질문이 다르다. 그 현상에서는 달빛·유량·각도가 중심이지만, 이번 현상에서는 내 뒤의 태양과 앞쪽 안개, 관찰자의 그림자가 중심이다. 둘 다 물방울과 빛이 관련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현상으로 묶어 설명하지 않는다.
실제 산에서 안개를 만났다고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가장자리로 이동하거나 위험한 자세를 취할 이유는 없다. 광학 현상의 설명은 절벽·고층 옥상 접근을 권하는 안내가 아니다. 안전한 위치에서 보이는 장면을 이해할 때, ‘다른 사람이 저 멀리 있다’는 첫인상 대신 빛이 어디서 오고 내 그림자가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