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자주 듣는 ‘손대지 마세요’와 반대되는 관람이 시작됐다.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특별전 ‘점에서 세상으로: 훈맹정음 100주년’에서는 조각을 손으로 살펴보고, 전시 자료의 촉각 모형을 만날 수 있다. 한글날에 읽는 문자를 잠시 눈에서 손끝으로 옮겨 보고 싶다면, 이 전시의 볼거리는 옛 점자표만이 아니다.
코가 없는 코끼리, 손으로 형태를 찾는 시작
전시의 프롤로그에는 엄정순의 ‘코 없는 코끼리 no.7’이 놓인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이 작품을 손으로 감상할 수 있게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시각에 익숙한 관람객에게도, 손끝으로 더듬을 때 동물의 모양을 어떻게 알아가는지 질문을 던지는 출발점이다. 멀리서 전체 모습을 한 번에 보는 관람과 가까이서 표면과 형태를 찾는 관람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다만 ‘만지는 전시’라는 말이 모든 원유물을 만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주요 자료에는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촉각 모형을 별도로 제공한다. 공동주최 기관인 국립한글박물관의 웹진은 점자 타자기 미니피히트와 족답식 제판기의 원자료, 그 구조를 표현한 모형을 나란히 소개한다. 실제 전시장에서는 작품과 모형의 안내를 구분해 따라야 한다.
설명문에는 점자, 동선에는 서로 다른 촉감
박물관은 모든 설명문에 점자를 함께 표기하고 음성해설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자료를 눈으로 읽는 경로에 손과 귀로 이해하는 경로를 더한 구성이다. 점자를 모르더라도 모형의 형태를 손으로 살펴보고 해설을 들으며 전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 단순히 점자 글자를 벽에 붙인 전시와는 다른 부분이다.
공간에도 촉각을 사용한다. 벽과 진열장에 안전 손잡이와 서로 다른 촉감의 재질을 붙이고, 공간의 시작점은 곡선, 진열장은 직선으로 배치하는 규칙을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색의 밝기와 채도도 조절했다. 이는 기관이 공개한 접근성 설계의 내용이며, 개별 관람객이 현장에서 경험한 편의나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는 실측 결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자기 이름을 점자로 쓰고, 설명을 듣고 그린다
체험 공간에서는 점자책과 촉각책을 직접 읽고, 점자표를 보며 자기 이름을 써 볼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점자 도장과 색칠 활동지도 마련됐다. 설명을 귀로 들은 뒤 그림을 그리는 음성해설 체험은 보이는 형태를 그대로 베끼는 활동과 다르다. 말로 전해진 정보를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이는지 경험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에는 실제 점자판과 점필을 이용해 관람 소감을 남기는 공간이 이어진다. 전시를 보고 난 뒤 문자를 직접 만들어 보는 과정까지 포함한 셈이다. 아이와 함께 간다면 점자가 쓰인 물건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름이나 짧은 감상을 점자로 바꿔 보는 활동으로 관람을 이어갈 수 있다. 세부 체험 운영은 현장 안내에 따른다.
100주년은 11월 4일, 전시는 내년 2월까지
훈맹정음은 송암 박두성이 제자들과 연구한 한글 점자로, 1926년 11월 4일 반포됐다. 올해는 그로부터 100년이다. 전시는 한글 점자의 탄생과 보급뿐 아니라, 점자정보단말기와 생활용품 등 점자가 쓰이는 현재를 함께 다룬다. 한글날인 10월 9일과 훈맹정음의 반포일은 서로 다른 날짜라는 점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국립한글박물관·국립세계문자박물관·송암점자도서관이 공동으로 마련한 전시는 10월 7일 개막했으며 2027년 2월 14일까지 계속된다. 장소는 인천 센트럴로 217,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이고 관람료는 무료다. 서울 용산의 국립한글박물관 주소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공동주최 기관의 전시 소개를 통해 찾아가더라도 실제 전시장은 인천이다.
공식 전시 안내의 관람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이며 입장은 마감 30분 전까지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당일은 휴관으로 안내한다. 연휴에 방문하거나 내년까지 일정을 잡을 때는 장소와 휴관 조건을 함께 확인하면 된다. 이 기사는 개막 보도자료와 공식 전시 소개를 바탕으로 정리했으며, 기자가 현장에서 모든 체험을 해 본 관람 후기는 아니다.